해제
《현대조선문학선집》 제6권 《계몽기시가집》에는 19세기말~20세기초에 창작발표된 국문시가작품들을 구전가요, 의병가요, 시조, 가사, 창가, 신체시 등 형태별로 수록하였다. 그중의 많은 작품들은 지난날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고 문학사에서도 취급되지 않았던것으로서 편찬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새롭게 발굴정리됨으로써 이 시기 문학발전의 면모를 더욱 뚜렷이 밝혀낼수 있게 되였다. 류린석, 최익현, 김택영을 비롯한 반일의병장들과 애국시인들의 한자시들은 이 시기에 창작된것이라도 이 선집에 싣지 않고 《조선고전문학선집》에 수록하였다. 그것은 그 시작품들이 주제사상적내용에서 당시 조선사람들의 애국적감정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을 반대하는 문명개화에로의 근대적지향과 결합되지 못하였으며 또한 그 형식이 민족적인것이 못되고 인민들에게 잘 리해될수 없는것이기때문이다.
시가의 주요한 특성은 현실생활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것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 체험한 생활정서를 토로하는 서정의 문학이며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현실을 제때에 기동적으로 반영하면서 사람들을 격동시키고 투쟁에로 힘있게 부르는 선동성과 전투성이 강한 문학이라는데 있다.
조성된 국내외정세로 하여 인민들을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위한 투쟁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애국문화계몽운동이 활발히 벌어진 19세기말~20세기초 우리 나라의 력사적현실은 바로 이러한 전투적형식의 시가문학창작을 추동하였다.
참으로 이 시기는 일제를 비롯한 외래제국주의렬강들의 침략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자주독립국가로 남게 되는가, 식민지로 전락해버리는가의 갈림길에 서있던 엄혹한 시련의 시기였다. 그만큼 정세는 준엄하였으며 각계각층 인민들을 깨우쳐 애국투쟁에로 불러일으킬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세기중엽에 이르러 우리 나라가 구미자본주의렬강의 침략을 받게 되였을 때도 무능하고 고루한 봉건통치배들은 나라와 인민을 돌보지 않고 개인의 권세와 향락만 탐내여 당쟁을 일삼았으나 우리 인민들은 굴함없이 외래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싸움을 벌렸습니다.》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렬강의 침략책동으로 나라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하여있던 이런 엄혹한 시기에 애국의 기치밑에 전국 각지에서 료원의 불길처럼 거세찬 기세로 전개된것이 농민들의 반일의병투쟁과 애국적지식인들의 애국문화계몽운동이다. 반일의병투쟁이 무력에 의하여 원쑤들을 조국강토에서 쳐물리치고 자주독립을 수호하려고 하였다면 애국문화계몽운동은 《내수외학》의 구호밑에 인민들을 깨우쳐 안으로 낡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밖으로 외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실현할것을 목적하였다. 이 운동들에는 광범한 각계각층 군중이 망라되였다.
지난 시기 실학사상가들이 《실사구시, 리용후생》의 구호를 들고 주로 지배계급출신의 상층인물들을 계몽하고 각성시키는 방법으로 사회개혁을 실현해보려고 시도하였다면 이 시기 애국문화계몽운동가들은 일반 민중을 계몽함으로써 나라의 문명개화를 이룩하고 국력을 배양하여 자주독립을 고수하려고 하였으며 자본주의적사회제도를 세우려는 구체적인 구상과 전망을 가지고있었다. 다시말하면 이 시기에 와서는 계몽대상이 바뀌였고 운동은 더욱 대중적성격을 띠게 되였으며 보다 큰 규모를 가지고 조직화되였다. 이 시기에 계몽운동단체들이 수많이 조직되고 많은 교육기관이 창설되였으며 출판활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된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1906년에 《대한자강회》가 창설된것을 위시로 《대한협회》, 《서우학회》, 《서북학회》, 《기호학회》, 《교남학회》 등이 속속 설립되였는데 그 설립의 목적과 활동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였다. 이 단체들은 모두 《인민을 깨우치고 국력을 배양하는 길이 오로지 교육과 산업에 있다》는데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우선 안으로 애국심을 배양하고 밖으로 선진문명과 학술을 흡수하여 주저함이 없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같이하여 국권을 회복할》(《자강회》창립취지서)것을 목적하였다.
이 단체들은 이러한 목적밑에 각각 기관지를 발간하여 외래침략자들의 침략책동을 단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낡은 사회의 이러저러한 병페를 신랄히 폭로비판하고 그 개혁의 필연성을 력설하였으며 다른 나라 약소민족들의 독립운동경험과 새로운 과학문화를 널리 소개하였다. 근대적인 인쇄기술의 도입은 이 시기 대중적출판활동을 보장한 또 하나의 조건으로 되였다.
이미 19세기말엽에 와서는 오랜 세월에 걸친 인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봉건적신분제도의 쇠사슬은 끊어졌고 경인간(서울~인천―1899년) 및 경부간(서울~부산―1904년)에 철도가 개설되여 기차가 달리고 서울장안에 전차가 통하여 과학문명의 위력을 사람들이 직접 눈앞에 볼수 있었던 그만큼 계몽운동의 대상으로 되는 인민대중도 훨씬 각성되여있었다.
이러한 주객관적요인에 의하여 이 시기 사회정치단체들의 기관지들은 애국문화계몽운동의 위력한 무기로, 신문화보급의 주요한 수단으로 되였다. 1883년에 창간된 《한성춘보》를 비롯하여 1896년의 창간인 독립협회 기관지 《독립신문》과 기타 《제국신문》(1898년), 《황성신문》(1898년), 《대한매일신보》(1905년), 《만세보》(1906년) 등이 모두 그러하였다. 이와 함께 각 학회들의 기관지인 《서우》, 《대한학회월보》, 《태국학보》, 《기호학회월보》들과 《조양보》, 《야뢰》, 《소년한반도》 등 정치문화의 종합잡지와 《수물학잡지》, 《상학계》, 《법률학계》와 같은 전문잡지들이 간행되여 계몽적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출판물들은 인민들의 깊이 든 잠을 깨우치는 《야뢰―밤의 우뢰》로서 힘있게 솟아오르는 《조양―아침해》로서, 또는 광활한 포부와 빛나는 희망을 품고 래일의 휘황한 발전을 기약하고있는 《소년조선》으로서 자처하였다. 이 신문, 잡지들에는 호마다 열렬한 애국적정론들과 계몽적성격의 해설론문들과 문예작품들이 게재되였는데 여기서 시가작품들도 계몽운동의 기수로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이 《계몽기시가집》에 수록한 작품들의 대부분(구전가요와 의병가요를 제외한)이 이 시기 신문, 잡지들에서 추린것이다. 이 시가작품들은 그 형태가 서로 다르고 주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열렬한 애국적감정과 문명개화에로의 지향을 반영한 공통성을 보여주고있으며 계승과 혁신의 합법칙적과정을 증시하고있다.
이 시기 산문작품들이 많은 경우에 애국적인 계몽사상가들의 손으로 씌여진것처럼 시가도 주로 계몽사상가들에 의하여 창작보급되였으나 산문과는 달리 시가창작에는 보다 광범한 각계각층 군중이 참가하였다. 그것은 시가의 형태상특성과 관련되여있다.
시가는 현실에 대한 느낌과 체험세계를 그대로 토로하며 짧은 형식으로 완결된 사상을 담을수 있는것만큼 지식수준이 그리 높지 못한 사람들도 지을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속에서 불려지면서 집체적지혜에 의하여 보태여지고 다듬어져 사상예술적으로 더욱 원숙한것으로 완성될수도 있다. 인민창작인 민요들과 의병가요들은 말할것도 없고 신문, 잡지에 실린 많은 시가작품들이 작자를 밝히지 않고 있는것도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주고있다.
이 시기 문학분야에 나서고있던 시대적과업에 의하여 계몽기시가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거대한 변화발전을 가져왔다.
말하자면 중세기를 고별하고 근대사회의 새 아침을 맞으려고 몸부림치고있던 때 외래제국주의의 침략책동으로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처하였던 당시 진보적문학앞에는 인민들을 자주독립과 민권옹호사상으로 교양하며 문명개화를 위한 투쟁에로 호소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 제기되였던것이다.
이러한 시대적과업에 의하여 시가문학의 주제사상이 규정되고 그 형식에서도 새로운 전변이 일어났다. 이 시기 시가문학은 애국문화계몽운동의 일환으로서 새 아침을 고하는 우렁찬 진군나팔, 시대의 메아리로 온 나라에 울려퍼졌으며 침략자와 그 주구배들을 단죄하고 그 가슴팍을 노리는 서슬푸른 창검으로 되였다.
계몽기시가문학의 기본주제는 크게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 일제의 침략책동과 친일파들의 매국행위에 대한 단죄로 나누어볼수 있으며 매개 작품들은 이러한 주제사상을 구체적인 생활자료와 체험세계에 기초하여 특색있는 시형상으로 실현하였다.
《구전가요》와 의병가요는 그 작자와 출처가 알려져있지 않은 인민창작을 묶은것이다. 의병가요는 의병투쟁에 떨쳐나서 손에 무장을 든 농민들―의병전사들의 노래라면 여기 《구전가요》부류에 묶어진 가요작품들은 보다 광범한 계층들에 의하여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불려진 노래들이다. 《꿈을 깨라》, 《학도가》, (1), (2), (3), 《강습의 노래》, 《문맹퇴치가》,《문맹타파가》,《국문가》,《신산념 불》,《신이팔청춘가》,《새벽종소리》, 《녀자의 설음》, 《부녀해방가》, 《금주가》 등은 그 제목과 주제사상 및 시형식이 말해주는바와 같이 애국문화계몽운동에 망라된 지방의 선각자들과 청년들에 의하여 창작되여 불러진 창가들이라면 《회야 회야 일진회야》, 《도적이 들어와 흐응》으로부터 《패말뚝》, 《토지조사반대의 노래》, 《농부타령》, 《원쑤로다》, 《왜놈종자야》, 《검자둥아》, 《십진가》,.《동도타령》 등은 전통적인 민요조로 불려진 농민들의 노래이다.
앞부문의 창가조의 노래들이 봉건을 반대하고 문명개화에로 호소한 계몽적성격이 주정을 이루고 있다면 뒤부분의 민요조의 노래들은 일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죄행을 폭로규탄하고 풍자조소하는 예리한 비판이 주정을 이루고있다.
이 작품들이 민간에서 불려지던것을 수집하였고 작자와 출처를 알수 없다는데서 《구전가요》로 취급하였지만 종래의 민요들에 비하여 사상적지향이 명백하고 시가형식도 훨씬 정제되여있는 특성을 보여주고있다.
갱생의 큰 종소리 요란하지만
눈멀고 귀먹으면 어찌 알리오
눈뜨고 귀밝히자 우리 동무야
낮에는 전가근력 농사 힘쓰고
밤에는 일심전력 공부하여서
농촌을 일취월장 갱생시키고
아름다운 우리 조선 건설해보세
동리에 해는 지고 황혼이 올 때
요란히 들려오는 야학종소리
귀하다 은혜로운 계몽운동은
방방곡곡 온 천하에 불붙듯하네
문맹은 이 세상의 락후자이요
학문은 문명이니 자랑이로다
깊이 든 잠 어서 깨여 힘써 배워서
명랑한 문화조선 건설해보세
의병대오에서 불려진 군가로 볼수 있는 《행보가》, 《의병대가》, 《군바바》, 《병정가》, 《독립가》, 《길군악》 등 의병가요들은 농민들이 그 기본성원을 이루고있던 의병들의 애국적기개와 생활정서를 반영하고있다.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
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 나라에
청년의 활동시대 다달았네
화승대 구심에는 내굴이 돈다
에헤야 에헤야 에헹에헹 에헤요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의병대가》제1절)
거동봐라 거동봐라
임종현이 거동봐라
서산나귀 손질하여
순금안장 지어타고
해주성내 둘러싸고
우지끈지끈 총소리낼 때
해주감사가 앞발루 뛴다
어화둥둥 어화둥둥
에헤 어미타불
만판 멋으루 달려간다
시화년풍 돌아온다
(《병정가》제1절)
이 시기 출판물에 발표된 애국적시가로서는 시조, 가사, 창가, 신체시 등 여러가지 형태의 작품들이 있다.
시조와 가사는 우리 나라에서 력사가 가장 오랜 민족시가형식인데 계몽사상가들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에로 호소하는 열렬한 애국사상을 이 형식들에 담아 노래하였다.
이 《계몽기시가집》에는 《대한매일신보》(1908년 12월 1일호)에 발표된 《애국심》을 위시하여 거의 매호에 한수씩 련속 게재된 50여수의 시조작품들을 수록하였다. 이 작품들은 그 주제사상적내용에 따르는 인식교양적의의뿐만아니라 문학발전에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 계승과 혁신의 합법칙성을 리해하는데서도 의의가 있다.
이 시조들은 이 시기 애국시가문학의 기본주제들을 다 다루고있지만 일제의 강박으로 1905년의 《을사5조약》, 1907년의 《정미7조약》이 날조된 이후시기의 창작인것으로 하여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하여 각성하고 분발할것을 고취한 작품들이 압도적다수를 이루고 있다.
만물이 다 봄이라
화풍세우에
만산화류 새빛을 띠였어라
우리도
문명풍조에
새 정신을
(1909. 1. 5.)
이내 말삼 들어보소
삼천리는 금수강산이오
이천만은 금수대우로다
어찌타
금수강산 생긴 몸이
금수대우
(1908. 12. 29.)
시조들중에는 이러한 열렬한 애국심으로부터 일제침략자들과 매국역적들을 만신의 증오를 담아 날카롭게 단죄하고있는 작품들도 있다.
네 어디 갈소냐 흥
요놈의 난장아
네 명이로다 아
어리화 흐응
네 가련하구나 흥
(1909. 3. 4.)
언덕밑에 은신하여
일시방심 제 못하고
피흉추길 애만 쓴다
아마도
부간부페 간신배는
여우 후신
(1908. 12. 13.)
이 작품들은 시조의 창조자들이 초장, 중장, 종장의 단시형식인 시조의 기본률조를 따르면서도 그 주제사상적내용에 상응한 새로운 률조를 찾아내기 위하여 진지한 창조적탐구를 기울였다는것을 말해 주고있다.
시조는 우선 시조 본래의 3행시형식을 7행으로 나누어 표기한데서, 《막방토》, 《가련명》과 같이 5행 또는 6행으로 나누고 민요조의 《어리와 좋다 흐응/ 지아자 좋을시구 흥》이라든가 《어리와 흐응》과 같은 조흥구를 붙여서 민족적정서를 더 한층 강화하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그리고 시조들중에는 《대장부》와 같이 사설시조형식을 취한 작품들도 있으며 《영춘》, 《일이서》, 《설중매》, 《운페일》 등과 같이 옛시조의 초중장을 기본적으로 그대로 두고 종장만을 새로 지어넣은 작품들도 있다.
춘절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마다
봉올봉올 맺히도다
춘설이
제 아모리 차다한들
피는 꽃을
(《설중매》 1909. 1. 10)
이 시기에 가사형식에 새로운 시대사상을 담은 작품들도 많이 창작되여 하나의 시가군을 이루고있다. 이 시기 가사작품의 주요한 특징은 일제의 침략행위와 그 앞잡이 매국역적들의 추악한 죄행을 예리한 풍자적필치로 폭로규탄하고있는것이다.
1909년 4월 25일부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개꼬리 삼년》은 《삼삼오오 작당하여 경향 각지 출몰하여 도적질에 분주한》 일본인이 개명했다 자칭하나 하는짓은 《짐승》이요 《야만》이라고 침략자의 정체를 폭로단죄하고있으며 《춘성유람》도 따뜻한 봄날 한낮에 소풍하려 거리에 나갔다가 온 성안에 울음소리 랑자하여 통곡하는 아이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는 형식으로 일제침략자들이 여러 백년 전해오던 토지가옥과 남북전답 지어 산정별당 행랑까지 모두 차지하여 제것으로 만들자고 책동하고있는 엄혹한 현실을 까밝히면서 울고 앉아있지만 말고 《너이끼리 정신차려/일심단합한 연후에/백절불굴 할량이면/제아모리 포악해도/범할수가 없느니라》고 고무하고있다.
시와는 달리 《득의천지》는 《나라권리 왼통 주고 일시 세력 빌어얻어 자기 지위 높이고 《일순경 보호밑에 앞뒤에 인력거라 외인의 개가 된 각대신의 활개짓》, 《외인에게 목이 매워 제정신을 다 버리고 자위단을 조직하여 동포형제 잔인하는 일진회의 활개짓》 등 리완용류의 대신으로부터 일진회, 순검나리, 탐보군, 일본관인, 문군수, 보부상, 개화군 등 일제의 개가 되고 끄나불노릇을 하는 친일파, 매국역적들을 풍자적으로 신랄하게 폭로비판하였다.
가사 《필하단평》, 《송병준아》, 《괴뢰세계》 등도 주제의 성격으르 볼 때 이 계렬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가사 《한탄세계》와 《병문수작》, 《농가》 등은 각계각층 모든 인민들이 못살게 된 당시 나라의 비참한 실정을 제시하면서 일제침략자들과 친일파, 매국노들의 천인공노할 죄행을 고발하고있다
가사들은 형식면에서 《한탄세계》나 《필하단평》과 같이 4•4조로서 분절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으나 《병문수작》, 《춘성유람》, 《괴뢰세계》 등은 절이 갈라지게 씌여져있다. 이것은 가사가 초기 창가형식으로 이어져가는 과정을 말해준다.
창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주로 계몽사상을 기본내용으로 한 운문시가로서 당시에 새로 받아들인 서양음악에 맞추어 불려진 노래의 가사부분을 말한다. 물론 그후에 오면서 창가의 주제령역은 확대되였고 창가의 개념자체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래라는 뜻으로 바꾸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 출현한 당시에 《○○가》의 제목으로 출판물에 실린 시가작품들이 모두다 곡이 붙여져 노래로 불려진것은 아니며 다만 언제나 불려질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있었을뿐이다.
처음에는 애국자들, 계몽사상가들에 의하여 자주독립과 문명개화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을 종래의 민요, 가사 형식에다 담은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였다. 그리하여 음률상으로 3•4조, 4•4조가 압도적다수를 차지하였다.
1896년에 《독립신문》지상에 발표된 초기작품들인 《동심가》(5월26일 리중원 작), 《신문가》(6월 2일 김교익 작), 《애국가》(7월 7일 리용우 작) 등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본사상에 있어서나 형식면에서나 많은 공통성을 가진다. 《동심가》는 전체 인민이 마음을 같이하여 문명개화를 할 필요성을 력설하고 그러기 위하여 남의 힘에 의존할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실천이 요구된다는 사상을 고취하였다면, 《신문가》는 초당에 깊이 든 잠을 깨워 문명개화를 이룩케 할 신문의 의의와 역할을 찬양하였고, 《애국가》는 상하가 모두 군사가 되여 조국을 지켜나가자는 노래인데 결국 이 노래들은 전체 조선인민이 단결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문명개화하고 부강하게 만들자는 사상에 있어서 동일하며 그리고 모두 4•4조가 기본률조로 되여있다.
사천년이 꿈속이라
만국이 회동하야
사해가 일가로다
뉘라서 깨려는고
구천을 바라보니
미인옥루 어디메요
창외에 더딘 날이
삼간이 높아서라
우연히 오는 말씀
우리 조선 신문이라
(《신문가》의 앞부분)
대조선국 인민들아
이사위한 애국하세
충성으로 님군섬기
평안시절 행복하세
(《애국가》의 첫부분)
당시에 애국문화계몽운동이 더욱 대중적으로 전개되면서 청년들은 다투어 상투를 자르고 《신학문》을 배우려고 학교로 몰려갔다. 청년들은 오래인 잠에서 깨여나 광활한 포부와 희망을 안고 학습과 조련(군사훈련)에 열중하였다. 그들은 나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떨쳐나선 열렬한 정치청년이였고 웅변가였으며 우렁차게 노래창가를 부르며 발맞춰나가는 조국보위자였다. 종래의 시조나 가사를 그대로 읊는것은 힘차게 활개치며 전진하는 이들의 호흡에 맞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의 전진속도에 알맞는 노래로서 창가가 등장하게 되는것이다.
같은 해 1896년 《독립신문》에 실린 《독립가》(최병연)는 4•4조이면서 4행 1절로 분절되였을뿐아니라 4•4조 4행의 후렴구가 절마다 붙어있다.
오주구역 천정이라
아시아주 동양중에
대조선국 분명하다
(후렴)
독립기초 장구슬은
군민상에 제일이라
기쁜 날 기쁜 날
대조선국 독립한 날
널리 불려진 《권학가》(《서우》1907년 4호)나 《학도가》, 《상복유사(《대한매일신보》1906년) 등은 이에 대하여 잘 말해주고 있다. 《권학가》나 《학도가》의 기본사상도 또한 나라의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청년들이 힘써 배우자는것이다. 그런데 《생존경쟁 당차시대에, 국가흥망이 내게 달렸네》로 시작되는 《권학가》가 5•5조라면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패종을 들어보아라…》는 6(3•3) 5조이며 《상봉유사》는 기본적으로 4•5조이다.
이러한 시가률조의 변화는 그 작품들의 사상정서의 변화와 관련되여있다. 《권학가》나 《상봉유사》는 1905년 《을사5조약》에 의하여 나라의 주권이 침해된 울분과 비장한 정조가 흐르고있으며 이에 따르는 새로운 률조가 창조되여있다.
오늘날에 다시 만나니 나라 생각 더욱 끓었네
언제나 언제나 독립연에 다시 만날가
청년들아 참 분하고나 저 원쑤를 다 몰아내고
저 원쑤가 참 분하고나 소평천하 소원이로세
언제나 언제나 개선가를 높이 부를가
시는 조국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국가흥망의 책임이 오로지 청년들의 두어깨에 지워져있는만큼 락심말고 분발할것을 호소하면서 소원이 반드시 성취될것이라는 다짐으로 끝나고있다.
《권학가》에서도 《노예희생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약육강식과 우승렬패》의 승냥이법칙이 좌우하는 《생존경쟁 당차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동포를 구제하기 위하여 《혈루를 휘쇄하고 분발심으로》 학문일사에 헌신할것을 호소하고있다.
이 노래들에는 원쑤들―외래침략자들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증오심, 어려운 현실적과업을 자각하고 한몸 바쳐 수행해나갈 비장한 각오와 결의가 표현되여있으며 형식은 후에 오는 신체시에 접근하고있다.
그러나 이 시기 창가작품들이 모두다 이러한 사회정치적의의가 있는 적극적인 주제를 다루고있는것은 아니다. 일제는 조선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인민들의 민족자주의식을 마비시키려고 광분하면서 그러한 음흉한 목적실현에 제놈들의 직접적통제밑에 있던 학교교육을 악용하였으며 음악교육의 교재로 되는 《창가》에서도 사회정치적주제의 작품들을 거세말살하도록 강요하였다.
당시 괴뢰정부《학부》에서 출판한 《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에 27편의 창가작품이 실렸는데 그것들은 《안―기러기》, 《월―달》, 《지연과 팽이》, 《시계》, 《토와 구―토끼와 거부기》, 《접―나비》, 《이앙―모내기》 등등 자연풍경을 노래한것이 대부분이고 인간생활과 직접 관련된 사회적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학문가》, 《친―어버이의 은》, 《사―스승의 은》, 《선우―착한 벗》 등이 있으나 그 주제사상적내용은 대부분이 사회계급적성격을 거세한 봉건적륜리도덕을 고취하는것이였다.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전통적인 민족시가형식인 시조와 가사, 새롭게 형성발전한 창가에 이르기까지 《계몽기시가》는 그 주제사상적내용에서 많은 공통성을 가지며 애국문화계몽운동의 힘있는 수단으로써 인민들에 대한 애국주의교양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의병가요와 시조, 가사는 말할것도 없고 새로 발생한 창가까지도 포함하여 그 내용과 형식에서 일련의 제한성을 드러내였다. 우선 그 작품들의 주제사상적내용에서 창작가자신들의 계급적제한성을 발로시켰다. 의병가요들이 봉건적충의사상에 기초한 애국 일반을 고취하고 문명개화의 근대적지향과 결합되지 못하였다면 애국문화계몽사상을 반영한 시가작품들은 반일의병투쟁의 역할을 무시하였다. 창가까지도 포함한 이 시기 애국적시가들은 부르죠아민족주의에 기초하여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주장하였으나 일제침략을 반대하고 봉건제도를 혁명적으로 변혁하기 위하여 투쟁할데 대한 문제는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형식면에서도 정형시의 틀에서 벗어져나오지 못하였고 일반인민들이 리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의 표현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1908년 최남선(1890~1957)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 《소년》에 게재된 그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시―신체시 발생의 고고성으로 되였다.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태산같은 높은 뫼 집채같은 바위돌이다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튜르릉 콱
칼이나 륙혈포나
그러나 무서움 없네
철장 같은 형세라도
우리는 웃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것 짐을 지고
큰길을 걸어가는 자일세
우리는 아무것도 지닌것 없소
비수나 화약이나
그러나 두려움 없네
면류관의 힘이라도
우리는 웃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것 광이삼아
큰길을 다사리난 자일세
…
그러나 이 시들은 일제의 침략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던 당시 인민들의 요구와 지향을 명확히 구현하지 못하였으며 형식면에서도 매련의 해당 시행이 같은 시률을 반복하고있고 시적표현에 창가투가 일부 남아있다.
근대시로서의 이 시들의 이와 같은 미숙성은 당시 반봉건적인 사회정치력량의 취약성, 이미 일제가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거쳐 우리 나라의 내정과 외교권을 강탈하고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언론, 출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있던 현실과 특히 작자인 최남선이 인민운동과 련결되지 못하고 사회정치적단련이 없으며 세계관이 확립되지 못한 18살의 소년이였다는 제반 사정을 반영하는것이였다고 보아진다.
《소년》지는 호를 거듭하면서 잡지의 주간이였던 최남선자신의 작품들(적지 않은 경우 공륙, 공륙식이라는 필명으로 발표)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쓴 《우리의 운동장》, 《농부가》, 《별》등 시작품들을 적지 않게 실었는데 운률과 시행 조직에서 점차 다양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있다.
이 시들은 이렇게 현실에 대한 시적인식과 표현에서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유시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시조나 가사의 정형률을 깨뜨리고 창가의 틀에서도 벗어나 우리 나라 시문학사에서 자유시에로의 길을 열어놓은 선구자적의의를 가지며 지난 시기 낡은 시형식과의 대비에서 새롭다는 의미로 신체시, 신시로 불리우게 되였다.
최남선은 소년들을 계몽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새별》 등 잡지들을 계속 간행하여 새 문화의 보급에 힘썼으며 우리 나라에서 첫 종합잡지 《청춘》(1914년)을 간행하기도 하고 《신문관》, 《조선광문회》 등을 창립하여 나라의 귀중한 민족고전들을 널리 수집 보관하고 간행하는 사업도 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때 《조선독립선언서》 작성자의 한 사람으로서 근 3년간 일제감옥에 갇혔다가 출옥한후에도 주간지 《동명》, 신문 《시대일보》를 발간하는 등으로 당대의 민족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최남선은 일제의 탄압이 날로 더욱 강화됨에 따라 20년대후반기에 와서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위원회》 위원, 《중추원》 참의 등 침략자의 벼슬을 받아물고 놈들의 식민지통치에 협력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나중에는 력사가로 행세하면서 상전이 쥐여준 각본에 따라 괴뢰 《만주제국》의 관리를 양성하는 《건국대학 교수》가 되고 일본 신도 《간나가라노미찌》에 대한 라지오방송을 하여 조선청년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침략전쟁에 내모는 순회강연을 하는 등 파렴치한 반역행위로써 조국과 민족앞에 씻을수 없는 죄과를 저질렀다.
이 시기에 와서 사회정치적주제의 신시창작에서는 손을 떼고 정치적으로 타락한 자신의 신변잡사와 《정신적고뇌》를 낡은 시조형식으로 읊조린 작품들을 묶은 시조집 《백팔번뇌》를 낸데서 그의 사상정치적변질상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물은듯 단단한 속은 알이 알가 하노라
이 《계몽기시가집》에는 1910년 일제강점이전에 간행된 《소년》지에서 그의 작품 7편을 포함한 신체시의 일부를 추려서 실었다. 그것은 근대적의미의 자유시를 창작하기 위한 시문학운동이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투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애국문화계몽운동시기에 이미 시작되였다는것을 명백히 밝혀 독자들에게 우리 나라 시문학발전의 로정을 정확히 리해하도록 도움을 주자는데 있다.
김하명
Contents
구전가요 및 의병가요
- 꿈을 깨라
- 강습의 노래
- 학도가
- 학도가(1)
- 학도가(2)
- 학도가
- 문맹퇴치가
- 문맹타파가
- 국문가
- 할일이로다
- 신산념불
- 새벽종소리
- 신이팔청춘가
- 녀자의 설음
- 부녀해방가
- 철모르는 신랑자
- 금주가
- 《회야회야 일진회야》
- 도적이 들어와 흐응
- 개꼬리
- 평양은 내곳
- 패말뚝
- 토지조사반대의 노래
- 농부타령
- 원쑤로다
- 섬도적
- 왜놈종자야
- 검자둥아
- 십진가
- 동도타령
- 수자풀이
- 아동십진가
- 수자풀이 십진가
- 애국심
- 독립가
- 단심가
- 승냥이
- 이무기
- 금 닭
- 안중근의 노래
- 행보가
- 병정가
- 독립가
- 독립군가
- 독립군사발가
- 길군악 (1)
- 길군악 (2)
- 길군악 (3)
- 길군악 (4)
- 길군악 (5)
- 잦은 길군악
- 출진가
- 의병가
- 의병가
- 의병대가
- 바람
- 군바바
- 용진가
- 작대가
시조
- 애국심
- 조선반도
- 화채비결
- 학생지남
- 조요경
- 통소력
- 보강결
- 권소년
- 단체력
- 권농부
- 면금수
- 군자절
- 영춘
- 신정신
- 고수력
- 대장부
- 일이서
- 설중매
- 소생단
- 운페일
- 소천금
- 탕자계
- 배양력
- 막방토
- 가련명
- 숭의리
- 이목 총명한들
- 도언
- 재완인
- 상사곡
- 국사밖에
- 하심장
- 동포야
- 일진광풍
- 대청결
- 적어도
- 감중련
- 희마랍
- 하마 올듯
- 고연리
- 더욱 바삐
- 바삐 걸어
- 지사야
- 남천안
- 래영웅
- 염라부
- 인간공도
- 저렇듯
- 서천우
- 사생간에
- 석불
- 불여귀
- 막우유
- 영웅 찾어
- 영웅혈
- 룡총마
- 감춘
- 원조
- 파춘면
- 대사업을
- 나를 반겨
- 조선혼아
- 늙기전에
- 때 좋다
- 전가
- 꾀꼬리
- 봄은 가는데
- 행락
- 관포교
- 한치의 사람마음
- 귀거래
- 흥타령
가사 (1)
가사 (2)
가사 (3)
가사 (4)
창가 (1)
- 대조선 자주독립 애국가
- 애국가
- 동심가
- 애국가
- 애국가
- 애민가
- 애국가
- 애국독립가
- 애국가
- 운동가
- 추도가
- 독립가
- 사상팔변가
- 생욕사영가
- 단연동맹가
- 제야공송매일보
- 신년송축가
- 심주가
- 한양가
- 혈죽가
- 가곡
- 그 무엇이 부족하야
- 소년모험맹진가
- 아동십진가
- 조선반도
창가(2)
- 서우사범학교 학도가
- 각 학교 운동가
- 권면가
- 권학가
- 청년학우회가
- 청년학우회 행보가
- 학도가
- 식송
- 공부
- 나아가
- 학문가
- 사절가
- 소년의 여름
- 사시경
- 춘조
- 권학가
- 농부가
- 수학려행
- 공덕가
- 운동가
- 졸업식
- 갈지라도
- 친의 은
- 사의 은
- 선우
- 표의
- 달
- 지연과 팽이
- 시계
- 토와 구
- 접
- 이앙